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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가 ‘암’에 걸리자 며느리를 한의원에 데려간 시어머니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한 며느리의 ‘사모곡(思母曲)’에 많은 이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해당 사모곡은 며느리 김현숙(가명) 씨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 2016년 공개된 이후 꾸준히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먹먹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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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친딸을 대하듯 큰 사랑을 베풀어 준 시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김씨의 사모곡은 김씨의 어린 시절 회고에서 시작된다.

김씨가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당시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김씨와 김씨의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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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 / 게티이미지

엄마는 슬픔도 뒤로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여자 혼자 꾸려 나가는 형편이라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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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어린 딸들은 번듯하게 성장해 대학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시댁의 단란한 가정 분위기와 시댁 어른에게 반해 졸업 2년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혼자 있을 친정 엄마를 생각하면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딸의 마음을 안 친정 엄마는 괜찮다며 결혼을 재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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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행복한 1년을 맞이하던 해에 슬픈 현실을 맞게 되었다. 친정 엄마가 암 판정을 받은 것.

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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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도 친정 엄마도 모아 놓은 돈이 없었기에 김씨는 당장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남편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자신이 융통해보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김씨는 친정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병원비 때문인지 친정 엄마는 마무리할 일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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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시어머니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김씨는 밀려오는 서러움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연합뉴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며느리의 울음소리에 시어머니는 “현숙아 너 우니? 울지 말고 내일 나랑 3시간만 어디 다녀오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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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현숙 씨가 가게 된 곳은 다름 아닌 한의원이었다. 시어머니는 현숙 씨를 위해 보약을 지어주었다. 이어 백화점에 데려가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4벌, 선식 등을 사주었다.

그제서야 시어머니는 현숙 씨에게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 먹지 말고, 입지도 말고…”라며 봉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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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연합뉴스

이어 시어머니는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니. 병원비에 보태 쓰거라”고 말하며 현숙 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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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 씨는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으려 했지만 시어머니는 끝끝내 주머니에 넣어주며 현숙 씨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순간 저도 모르게 현숙 씨는 시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엉엉 울고 말았다.

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연합뉴스

봉투에 담겨있던 2천만원 덕분에 친정 엄마는 급한 수술을 마치고 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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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되지 못한 친정 엄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지만 김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정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이듬해 봄 시어머니는 사돈의 상태가 악화돼 임종이 임박했다는 비보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사돈의 손을 잡고 곁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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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연합뉴스

의식이 없던 친정 엄마의 귀에 대고 시어머니는 “사부인 저 왔어요. 현숙이 걱정 마세요. 사돈 처녀도 제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낼게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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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친정 엄마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거짓말처럼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3일장으로 치뤄진 장례식 동안 시어머니는 함께 빈소를 줬고 이후 현숙 씨의 여동생이 결혼할 때는 혼수까지 직접 마련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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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게티 이미지

시어머니는 이에 그치지 않고 결혼식 당일에는 시아버지와 함께 혼주 자리에 앉아 축하해주었다. 이에 현숙 씨의 동생도 현숙 씨의 시어머니를 친정 엄마처럼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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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랑을 베풀어줬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9재를 챙기던 중 현숙 씨는 울먹이며 ‘사모곡’을 썼다.

현숙 씨는 사모곡을 마치며 “오늘. 우리 시어머님의 49재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며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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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든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니 너무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라며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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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현숙 씨는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어머니!”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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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나중에 저런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감동적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