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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강제로 ‘문신’을 당한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의 증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평창 올림픽에는 참석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위안부 협의를 제대로 이행하라는 이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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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목격자들

또한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추가)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약속을 지키는 것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일본의 사과를 듣지 못한 채 영면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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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2016년에 방영된 뉴스타파 목격자들 -슬픈 귀향, 북녘 할머니의 증언’에 나온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의 증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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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1992년부터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 기록한 증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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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할머니는 1920년 함경남도 풍산군 출신으로 14살이었던 1933년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밭에 일하러 간 부모님 점심밥을 가져다주기 위해 우물가로 나섰다가 일본군과 마주쳤고, 일본군은 손과 발을 묶어 할머니를 파발리 경찰서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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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8명이 들어와 정 할머니에게 옷을 벗으라고 협박했다.

말을 듣지 않고 소리 지르며 저항하자 경찰 부장은 입에 누더기를 물려 주먹으로 정 할머니의 눈을 때렸다.

그 충격에 약 3년간 정 할머니의 한쪽 눈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일본군은 정 할머니를 혜산시 군부대 막사로 끌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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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정 할머니처럼 일본군에게 끌려온 400여 명의 소녀들이 있었는데, 모두 12살, 13살, 14살 등 20살 미만이었다.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하루에 40명이 넘는 일본군이 정 할머니와 끌려온 소녀들을 찾았다.

일본군들은 말을 안 듣는다며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몸을 지지기도 했다. 화상으로 인해 살이 다 벗겨졌는데도 몇 십 명의 일본군들은 또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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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할머니는 위안부를 거부한 소녀 15명이 일본군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고 전했다.

하루는 일본 장교가 “하루에 100명 상대할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라”라고 지시했다. 한 14살 소녀는 “왜 우리가 100명을 상대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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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일본군은 그 소녀는 팬티 한 장만 입고 머리채를 잡힌 채 300개 못이 박힌 판 위에 굴려지는 고문을 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군은 소녀의 목을 칼로 내리쳤고, 땅에 묻기도 아깝다며 시신을 변소에 던지는 참극을 벌이기도 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소녀들이 눈물을 흘리자 “저 계집들이 사람 고기 못 먹어 운다”며 시신을 물에 삶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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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할머니는 아직도 그 날 어린 소녀들을 무참하게 죽인 일본군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니시하라 수비대 대대장, 야마모토 중대장, 가네야마상 소대장…”

뉴스타파 목격자들

1937년 6월 15일 정 할머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도주를 시도했다가 17일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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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주모자를 대라”고 했지만 정 할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고, 그때부터 고문이 시작됐다.

도주를 시도한 12명의 입에 고무호스를 물려 배속에 물을 주입한 뒤 널빤지로 배를 눌러 다시 게워내게 했다.

양쪽에서 널빤지로 강하게 눌러 심장이 깨지고 갈비뼈, 허리뼈가 다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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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주모자를 대지 않자 일본군은 소녀들을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그 앞으로 검은색 기계를 가져왔다. 작은 바늘이 잔뜩 달린 고문기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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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바늘에 먹물을 묻혀 소녀들의 입안, 가슴, 배 아래쪽까지 온몸에 문신을 새겼고 그 자리에서 10명의 소녀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때 만들어진 문신은 지금도 정 할머니의 입 안과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정 할머니는 지금도 보상금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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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왜 데려다가 우리 여성들을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