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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아프지만 꼭 알아야할 우리 역사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남한산성’이 국내 최정상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의 만남, 그리고 70만 부가 판매된 김훈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원작 조합으로 2017년 하반기 최대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여기에 배우 김윤석이 ‘남한산성은 우리에게 굴욕적인 역사이고 피하고 싶은 기억, 하지만 제대로 알아야 할 역사’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1636년 병자호란을 함께 알고자 하는 네티즌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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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은 과연 어떤 사건이었을까?

 

 

1.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시작

 

병자년에 일어난 오랑캐와의 전쟁이라는 뜻을 가진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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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4월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새로운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이때 청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자 조선의 조정은 둘로 나뉜다. 바로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 그리고 청과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자는 `척화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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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조선의 왕 인조는 척화파의 손을 들어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자 9개월 후인 1636년 12월, 청이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며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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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남한산성인가

 

조선군은 조선을 침략한 청군을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고, 단 일주일 만에 한양이 함락당하자 강화도로 피신하던 인조는 길이 막혀 근처의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신한다. 남한산성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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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한산성에서의 갈등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한 후 47일 동안 쉴새 없이 많은 일이 벌어진다. 청의 대군에 둘러싸인 채 성안에 고립되면서 추위와 굶주림뿐 아니라 적의 거센 압박과 무리한 요구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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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뉘었던 조정의 팽팽한 구도도 이어진다. 청의 굴욕적인 제안에 화친(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하자는 최명길의 의견과 척화(화친하자는 논의를 배척함)하자는 김상헌의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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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 왕조의 항복

 

두 의견 중 인조는 척화를 택하고 청나라에 대항하였으나, 청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패배한다. 그리고 청나라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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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인조는 항복한다는 의미로 삼전도에서 절을 하며 오랑캐에게 예를 올려야 했고, 청 태종은 이를 ‘기념’해 삼전도에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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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프지만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다. 또한, 남한산성에서 벌어졌던 조정의 갈등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 ‘무엇이 지금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던지며 380여 년이 흐른 현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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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9월 개봉하는 <남한산성>은 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뇌하는 조선의 왕 ‘인조’ 역의 박해일, 화친해야 한다는 ‘최명길’ 역의 이병헌, 척화해야 한다는 ‘김상헌’역의 김윤석. 이들과 명 제작진들이 스크린에서 보여줄 병자호란은 어떨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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