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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성기’를 가졌었다 소문난 역사 속 인물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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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 크기가 성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선 아직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기술’과 ‘사이즈’ 중 어떤 쪽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기술’은 연마할 수 있지만 ‘사이즈’는 선천적인 부분이라 타고나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큰 ‘물건’을 동경하는 경향은 옛날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남성중심사회에서 지도자의 성기 크기는 권력과도 같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로 그 크기를 왜곡하거나, 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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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사람일수록 물건이 컸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는 미신에 불과하지만, 거대 성기를 지녔다고 전해져 오는 역사 속 6명의 남성을 소개한다.

 

 

1.지증왕(43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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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신라 제 22대왕이었던 지증왕은 업적만큼이나 ‘거대한 성기’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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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는 지증왕이 한 자 다섯 치(약 34-40cm)나 되는 남근을 소유했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신붓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기록에 따르면 한 신하가 적합한 베필을 소개했는데, 이 여성은 키가 무려 일곱 자 다섯 치(약 220cm)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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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에 대해 당대 학자들이 지증왕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성기 크기를 과장했다고 말한다.

 

 

2.노애(?~기원전 238)

ebs ‘불멸의 진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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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말기 진나라 사람이다.

그는 환관이었지만(환관이 아니었으나 환관으로 위장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꾀를 부려 거세를 피하고 진시황 영정의 생모인 조희와 사통하는 관계였다.

사서에 따르면 노애는 그 대물로 명성이 자자해 뭇 여성들은 그와 하룻밤을 보내기를 늘 소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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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한 성기로 무거운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리는 묘기를 부렸다고 한다.

그는 후에 태후와 내통하다 낳은 아이를 빌미로 반란을 꾀하다 영정에게 진압당하고 참형에 처해졌다.

 

 

3. 라스푸틴(1869~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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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teatr.ru

 

 

제정 러시아 말기의 수도자이자 예언자이다.

괴승(怪僧)이라 불린다.  빈농 출신으로 35살에 ‘편신교’라는 종교에 가입해 전국을 순례하며 농민들의 ‘성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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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푸틴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러시아 왕궁도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이 앓던 혈우병(피가 응고되지 않는 병)을 고친 이래로 왕가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그 이후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러시아 제국의 멸망에 일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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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대한 성기로도 유명했는데, 발기하지 않고도 ’30cm’가 넘었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1916년 그를 견제한 귀족들에게 살해당했다.

 

 

4. 경덕왕(?~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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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 35대 왕이다. 돈 대신 땅을 월급으로 지급하는 ‘녹읍제’를 부활시키고, 중앙행정체계를 정비한 업적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의 성기가 8치(약 24cm)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증왕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짝이 없어 애태웠다는 기록 역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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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표훈대덕’이라는 스님이 도움을 주어 후생을 보는 데 성공했는데, 그렇게 얻은 아이가 주색잡기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진 신라 제 36대 왕 ‘혜공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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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

동생 프란치스코가 그린 그림,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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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란 뜻으로 쓰이는 ‘카사노바’는 사실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대단한 여성 편력가로, ‘바람둥이’의 대명사였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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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성편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는데, 그가 추파를 던진 여성들은 유부녀, 귀족, 수녀 심지어는 친딸에게까지 추파를 던졌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한 여성을 꾀어내려고 하는 순간 그 어머니가 그 여성은 카사노바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이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만의 피임법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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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한 생활을 거듭한 나머지 카사노바는 40대 중반 성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거대한 성기의 보유자였지만, 그가 수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태도와 언변 때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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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레고리 포템킨(1739~1791)

wikipedia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 2세의 궁정 대신이었다. 그는 예카테리나와 연인 사이었으며, 당시 여제보다 10살 연하였다. 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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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포템킨’이 바로 이 사람이며, 알아주는 대물이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