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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ies: 국제

‘아동 4명’을 성폭행·살해한 것도 모자라 ‘인육’까지 먹은 ‘오타쿠’가 체포된 후 남긴 소름돋는 말


‘오타쿠’는 특정 분야에 심하게 열중하는 사람들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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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오타쿠에 대한 시선이 지금처럼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오타쿠는 일본어로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르는 말로 집안에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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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한편으로 상대방의 취미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내포돼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오타쿠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놓은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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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도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츠토무는 손에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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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을 거절당하며 장애는 그에게 콤플렉스가 됐다.

 

미야자키는 이후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해소할 대상으로 ‘어린 소녀’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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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22일, 어린 소녀에 대한 그의 병적인 집착은 결국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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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는 4살 소녀를 납치, 살해한 후 심지어 그 소녀의 시신을 시간했다.

 

또한 그는 이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사체 일부를 절단해 벽장 안에 보관하는 등 사체 훼손까지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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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그의 범행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총 4명의 여자아이를 납치, 성폭행, 살해했으며 그 시신을 훼손해 유기하거나 심지어는 인육을 먹는 등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간이감정 문진기록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2차원(동영상)보다 3차원(현실)이 더 좋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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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차, 2차 감정과 재판에서 그는 “모르겠다”, “다중인격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야자키의 재판은 판결까지 무려 7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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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의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책임지겠다”며 재판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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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에도 그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가 그렇게 돼 속이 시원하다”는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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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도쿄고등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감정과 판결 정정 요청에도 불구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2006년 사형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사형 판결 이후 2년이 지난 2008년 6월 17일 미야자키의 사형이 집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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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현지 보도에 따르면 미야자키 츠토무의 집에서는 6,000개가 넘는 음란물 비디오와 만화, 잡지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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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그의 사생활에 대해 대서특필하면서 그때부터 일본 사람들에게 ‘오타쿠’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