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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ies: 사람들

무시무시한 ‘폭군’부터 탁월한 ‘리더’까지 …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여성 7인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음에도 여성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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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처 수상,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 한 획을 그은 여성 리더들이 등장했지만 그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도 훨씬 낮았던 시대에도 최고의 지위에 오른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이라는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고 리더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을 모아봤다. 폭군부터 성군까지, 남성 중심의 정치 세계에서 리더로 나선 역사 속의 여성들을 살펴보자.

 

#1 엘리자베스 1세

영화 <골든에이지>

엘리자베스 1세는 여섯살 때부터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군주로서 자질을 쌓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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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라틴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에스파냐어, 웨일스어, 이탈리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독서량도 어마어마해 자신보다 책을 많이 독파한 학자는 없다고 자부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승마와 사냥,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춤을 즐기는 등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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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위클리

그는 재위 45년간 잉글랜드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끈 잉글랜드 해군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해 명실상부 바다의 최강자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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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잉글랜드 내 종교적 화해도 이뤄냈다.

 

#2 측천무후

채널 칭 ‘여황제 무측천’

중국에서 유일하게 황제가 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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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본래 당나라 고종 황제의 황후였지만 황태자들을 연이어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됐다.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그는 공포정치를 폈다.

그가 권력을 장악하고 정점에 오를 때까지 죽인 사람이 93명에 달한다는 설도 있다.

드라마 ‘무미랑전기’

그는 약 15년동안 정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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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는 가문과 혈통 중심의 기존 관료 등용 관습을 탈피하고 능력 위주로 관료를 등용해 당나라 전성기의 기반을 다졌다.

이는 측천무후 자신이 명문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뛰어난 문인들을 적극 우대해 문화를 융성했고 불교 숭상을 통해 중국 불교의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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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집권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공포의 시대였지만 백성들은 대체로 안정을 누렸다고 한다.

 

#3 클레오파트라

연합뉴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 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클레오파트라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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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남자를 홀리는 치명적인 팜므파탈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는 사실 역사에 남을 강력한 리더이기도 했다.

그는 방대한 양의 독서를 통해 엄청난 지식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언어 능력으로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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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고심하는 리더였다.

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해 이집트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그는 로마에 맞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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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태후

프리미엄 조선

19세기 말 권력을 휘어잡은 서태후는 황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47년간 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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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유교국가인 중국에서 여성이 통치자에 오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연합뉴스

서태후가 집권할 당시 청나라는 대내외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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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황족인 공친왕과 연대해 청나라 자강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제도와 인사를 개혁해 그는 한족들에게도 요직 진출의 기회를 주었다.

또한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등 부국자강운동에서 성과를 이뤘다.

 

#5 이사벨 1세

wikimedia

700년간 네 왕국으로 나뉘어 있던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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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오빠 엔히크 4세의 서거 후 카스티야의 왕위를 계승했다.

이사벨 1세는 아라곤 황태자 페르난도와 결혼해 나라를 함께 통치했다.

이후 남편 아라곤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에스파냐를 통일했다다.

gettyimagesKorea

또한 이듬해엔 그라나다를 정복해 교황으로부터 가톨릭 왕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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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그는 근대적 중앙집권국가의 기초를 닦고 문화진흥에 힘썼다.

궁정학교 설립과 문헌 편찬 등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그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전을 원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 빅토리아 여왕

위키피디아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 아일랜드 연합왕국과 인도의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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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위 기간동안 영국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그는 세계 곳곳에 영국 식민지를 설치해 영토를 확장했다.

위키피디아

또한 빅토리아 여왕은 선구적으로 산업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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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에 영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의회 민주주의 정착에도 기여했다.

64년이라는 긴 시간의 재위기간동안 빅토리아여왕은 안정적인 왕권을 수립하며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왕실의 전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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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덕여왕

MBC ‘선덕여왕’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첫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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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32년 진평왕이 노환으로 숨을 거둔 후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는 신라의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에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계급인 성골이었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즉위할 당시 그를 제외한 성골이 없었기에 그는 여왕이 될 수 있었다.

프리미엄조선

삼국사기는 그가 총명했을 뿐만 아니라 관대하고 어진 성품을 가졌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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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임금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불교 진흥에 힘 썼다.

재위기간동안 그는 분황사를 비롯한 25개의 절을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과 같은 여러 불탑과 불상을 만들게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첨성대 역시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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